가시고기

감상문/책 2017. 7. 7. 19:52

[가시고기 : 조창인]


 동화로 읽는 가시고기, 로 처음 접했던 것 같다. 동화로 읽는 가시고기는 삽화가 많고, 어린아이인 다움이의 입장에서 전부 서술 됐다. 하지만 '가시고기'는 일부 -'아빠는 멍텅구리 입니다.'와 같은 다움이의 입장 두어번, '응급실에 누워있는 선배를 만났다.'는 여진희의 입장에서 진행된 에필로그- 를 제외하고는 전부 '그는 아이의 병실을 올려다봤다.'와 같은 전지적 3인칭 시점으로 진행된다. 

 

 아빠, 선배, 그는 모두 '정호연'이란 한 사내를 가리킨다. 그는 다움이의 아빠이자, 여진희의 선배이다. 다움이는 백혈병에 걸렸다. 몇 번이나 재발해 입원과 퇴원을 반복한다. 다움이의 엄마는, 엄마보다는 현재 박인성의 아내이자 과거 정효연의 아내였던 하애리는, 그녀는 다움이가 초등학교도 채 입학하기 전 다움이와 아빠를 버리고 간다. 시인이었던 아빠는 돈을 위해 여성부 기자가 되고 후배 여진희를 만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친정과의 빈부격차가 마음에 안들었던 까닭이고, 하고싶던 그림을 계속 그리고 싶었던 까닭이다. 


 다움이는 아프고, 아빠는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한다. 돈이 있어야 아플 수 있다. 막노동을 뛰고 고깃배를 타며 사모았던 시집을 전부 팔고, 자신의 신념조차 모조리 판다. 그 과정이, 묘사가 참 아팠다. 신장을 파려 했지만 간에서 악성종양이 발견되고, 결국엔 각막을 판다. 다움이는 조각에 재능이 있어 그것을 눈독들인 엄마가 데려간다. 마지막까지 정을 떼기 위해 모질게 굴던 게 너무 아프게 다가왔다. '가시고기'는 두어번 읽었지만 그때마다 울었다. 수능이 끝나고 학교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었는데, 급식차 줄을 스며 뚝뚝 눈물을 흘린 기억이 난다. 문득 그 기억에 도서관으로 가 다시 책을 빌렸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울면서 읽었다. 


 중간에 성호라는 아이가 죽었다. 성호의 엄마는 끝내 다움이에게 사실을 말하지 않은 채 레고 장난감을 주었지만 다움이는 알 수밖에 없었다. 성호가 죽었다는 사실을.


 문체나 묘사도 마음에 들었다. 중간중간 과거를 삽입하는 장면도 어색하지 않게 자연스레 흘러갔다. 자신에게 쥐약을 쥐어준 아버지와 자신을 비교하며 힘들어하기도 했는데, 그런 경험이라곤 전혀 해보지 못했음에도 와닿았다. 특히나 기억에 남는 구절이 있다.


-38p, 지독한 가난뱅이들이었다. 그런데 친구는 그 시절을 그리움으로 떠올리고 있었다. 가난한 과거를 추억거리로 삼기 위해선 한가지 방법 밖에 없으리라. 오늘의 풍요함이 있어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었다. 


-62p, 하루를 살면 하루치의 치욕과 마주하는 나날이었다. 어찌하여 이렇게까지 비참해진 것일까. 세상과의 불화가 날로 깊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세상과 화해하고 싶었다. 타협이라고 해도 좋았다. 그 화해와 타협으로 아이를 살릴 수 있으리라고 믿고 싶었다.


-63p, 내가 왜 시를 포기하고 평론으로 돌았는지 알기나 해? 정호연 바로 너 때문이다. 기를 쓰고 발버둥쳐봐도 너보다 잘 쓸 수는 없다고 인정한거지. 그랬다. 네 시는 기막히게 좋았다. 신경질이 날 정도로. 그런데 이제 와서 시시껄렁한 시나 쓰겠다구? 날 실망시키지 마라…… 그간 왜 침묵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다시 시를 써라. 시시껄렁한게 아닌, 예전처럼 진짜 시를 말이다.


-180p, 돈이 없다는 건 진정 불편한 일이지 불행의 이유가 될 수 없다, 따라서 돈이 없다고 기죽을 까닭은 없노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현실과 유리된 몽상가의 푸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아이의 투병이 시작되면서 그는 실감했다. 돈이 행복을 가져다 줄 수는 없겠지만 얼마든지 불행의 구렁텅이로 빠뜨릴 능력은 갖고 있었다.


그는 아침부터 거리를 쏘다녔다. 친구를 만났고, 출판사를 전전했다. 자존심을 버리고 사정했다. 자신의 몸뚱이에 바겐세일 딱지라도 붙여놓은 기분으로 출판사를 기웃댔다. 그렇게 하루하루 덧없이 흘러갔으며, 어스름이 드리울 무렵 병원으로 돌아오는 길은 멀고도 참담했다.


-270p, 아내에게 되묻고 싶었다. 어떻게 마련한 돈인지 알아? 부도덕과 타협했고, 양심을 팔아치웠다구. 순수한 뜻으로 장기를 기증하는 사람들을 욕되게 했어. 하지만 나로선 그 수밖에 없었지. 그게 아이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아버지의 마지막 사랑이었어. 그런데 당신이 이제와서 무의미한 짓으로 되돌리려 하고 있단 말이야.


-275p, 하지만 겁나지 않아요. 옛날처럼 아픈 것도 아니구요. 이대로 팍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주욱 하고 있답니다. 옛날처럼 심하게 아팠으면 해요. 내가 죽을 정도로 아프다면 아빠는 반드시 날 보러 오겠죠. 아빠는 날 죽게 내버려두지 않을 테니까요.


 아빠는 가짜 아빠가 되기로 결심을 했나봐요. 아니면 정신이 어떻게 됐거나요. 그래서 소리지르고 화를 냈던 거겠죠. 말을 걸지도, 손을 잡아주지도 않구요. 아빠는 내가 지겹댔어요. 날 보고 있으면 울화통이 터진다고 했어요. 왜 갑자기 내가 지겨운 아들이 되었을까요. 난요, 착한 아들은 아니지만 아빠를 울화통 터지게 만드는 아들도 아니랍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사랑하는 사람은 아빠뿐이고, 아빠가 사랑하는 사람도 나뿐이죠.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언제까지나 함께 있어야 한다고 말한 건 바로 아빠에요. 그렇게 중요한 걸 왜 잊어버렸을 까요.


 내가 없어지면 아빠는 어떻게 될까요. 아빠 말대로 속이 시원할까요?


 내가 엄마를 따라 프랑스로 가게 된다면요, 아빠가 쬐금만 슬퍼했으면 좋겠어요. 쬐금만 슬퍼하면 우린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겠죠.


 우리 아빠는요, 내가 많이 아픈지도 모르고 있어요. 과장 선생님은 우리아빠랑 친하잖아요. 그러니까 우리 아빠한테 말해주세요. 다움이가 무지무지 아프다구요. 아파서 죽게 됐다구요.


-277p, 장한 아들이었다. 달려가 얼싸안고 등을 두드려주어야 마땅한 아들이었다. 오직 이날을 위해 애끓으며 살아왔건만, 그러나 만날 수조차 없는 아들이었다. 그저 망연히, 민과장 앞이라는 사실도 잊은 채 어깨를 들썩이며 한참을 울었을 뿐이다.

 

 아이의 곁을 지키지 못한 날이 이주일이 흘렀다.


 수없이 아이의 병실로 뛰어올라가고픈 욕망에 시달렸다. 그러나 어차피 아버지 없이 평생을 살아야 할 아이였다. 자신의 욕망을 앞세워, 이주일 동안 단련된 아이의 마음을 처음으로 되돌려 고통을 되풀이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민과장은 만날 때마다 모르핀 맞을 것을 강요했다. 그는 번번이 고개를 저었다. 전신에 경련이 일어나고, 이를 악물어도 저절로 신음이 새어나오고, 정신마저 혼미해졌다. 2년이 넘게 아이가 겪었을 고통을 온몸으로 실감하였고, 단 한 차례의 모르핀도 맞을 수 없는 이유였다.

 

 그랬다. 그는 아이에게 속죄하는 심정으로 고통과 맞섰다.


 아들아, 그 동안 네가 이렇게 아팠구나. 아빠는 몰랐다 네가 아프다면 아픈 줄만 알았지, 그 고통의 깊이가 얼마인지는 알지 못했다. 아들아, 네가 이다지도 크나큰 고통 속에서 그 많은 날들을 보냈구나. 열 살배기 가녀린 몸으로 그 높은 고통의 산들을 어떻게, 무슨수로 다 넘어왔니.

 

 아들아, 미안하다. 아빠는 미처 몰랐다. 네가 아프면 그냥 대신하고픈 마음이었는데, 그 마음조차 네가 겪었을 고통 앞에서는 덧없는 것이었구나.


-280p, 아, 아이였다. 아이가 잰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사무치도록 그리운 아이건만, 그는 일어서지 않았다. 매일 밤 꿈속에서 목이 쉬도록 불러본 아이의 이름이었다. 두 팔을 벌려 얼싸안던 기억에 한숨짓고 눈물 흘리던 그였다. 하지만 그는 아이를 부르지도 손을 내밀지도 않았다. 그래, 너로구나. 내 아들이구나…… 그렇게 낮게 되뇌었을 뿐이었다.


-283p, 아이가 한 손을 주머니에 찔러넣은 채 고개를 숙이고 뒤꿈치로 바닥을 꾹꾹 눌러댔다. 어서! 그는 단호하게 소리쳤고, 아이는 겁먹은 얼굴로 돌아섰다.


"주머니에서 손을 빼라…… 턱을 들어라…… 어깨를 쭉 펴라!"


 언제나 이유를 묻던 아이였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납득하기 전까지는 고집을 부리던 아이였다. 그러나 아이는 순순히 그의 명령을 따랐다. 


-287p, 나는 선배를 조수석에 앉히고 고속도로와 국도와 산길을 달렸다. 향리에 도착했을 떄 분분히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첫눈이었다. 지상에서 마지막으로 맞이하게 될 첫눈이 선배의 머리 위로 처연하세 내리고 있었다.


 몇 번이나 돌아갈 것을 말하는 선배였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다만 생각했다. 선배는 죽겠고, 세월의 여울에 씻기면서 내 기억 속 선배는 점차 희미해질 것이다. 하지만 매년 첫눈을 바라볼 때마다 선배를 그리워하리라는 사실을 나는 통렬한 아픔으로 받아들였다.


-288p, 새벽녘이었다. 선배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다움이한테 교회에 나가겠다고 약속해놓고 한 번도 가지 못했어. 지금이라도 기도를 해야겠어. 날 좀 일으켜줘."


 선배는 두 손을 모아 방바닥에 대고 그 위에 이마를 포갰다. 그게 뭐 그리 대단한 약속일까. 약속을 확인시켜줄 아이마저 떠나고 없는데……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고, 첫눈이 하염없이 하염없이 내리고 있었고, 선배는 기도하는 자세로 고요히 죽어갔다.


 선배는 그렇게 세상을 버렸다. 그 마지막 길마저 지독히 쓸쓸했다. 나와 피 노인만이 참석한 예식이었다.


 죽인 사람의 머리는 동편에 두어야 한다고 했지만, 나는 고집을 부려 선배의 머리를 북서쪽으로 향하게 한 채로 매장을 했다. 선배의 머리가 가리키는 방향에, 마지막 순간까지 그리워하며 눈물지으며 고통을 참아가며 부르던 아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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