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누군가는 알고있다.
[누군가는 알고 있다 : 르네 나이트 (역; 김효정)
영국 작가. 저번에 읽은 '미스터 하이든'이 재미있어 외국 문학 소설을 또 골랐다. 도서관 800번대에서 아무 사전 정보 없이 그저 눈에 밟히는 걸로 곧바로 빌려왔다. 그리고 처참히 실패했다. 이것은 실패라는 말로 밖에 표현될 수 없다.
일단 책 날개 가장 첫 줄인 '르네 나이트는 속도감 있는 문체, 짜임새 있는 구성, 반전이 돋보이는 스토리로 주목받은 베스트셀러 여류작가이다.' 부터 마음에 안든다. 여류작가? 제발. 지금은 21세기이다. 외국 문학인 만큼 작가의 나라가 궁금할 수는 있지만 내가 작가의 성별까지 알아야 하나. 그것도 여류작가라는 말로. 너무 많은, 불필요한 정보이다. 내 안에 있는 고정관념과 마주하게 되서 더 껄끄러운 걸 수도 있다. 여류작가, 하면 왠지 더 섬세한 감정묘사나, 이런게 있을거라 당연히 기대하게 되어버리는 내 모습이 말이다. 실제로도 감정묘사가 주를 이룬다는 것도 마음에 안들었다. 요약하자면, '여류작가'라고 밝힌 것과, 그 것을 보며 알게된 내 고정관념과, 그게 실제로 맞았다는 것이 모두 짜증이 났다. 여류작가라고 밝히지 말자. 작가는 글로만 승부를 보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글 자체도 마음에 안들었다. 그래서 하나하나 다 싫어보이는 걸 수도 있다. 인정한다. 전반적인 내용도 글을 이끌어나가는 방식도 싫었지만 '그래서 어쩌라고? 어떻게 되는건데?', 하는 궁금증은 이끌어낸다. 실제 이 책을 읽는 원동력은 짜증이었다. 욕하면서 보는 막장드라마였다, 나에게는. 처음에 책을 극찬하는 추천사들이 나온다.
더 없이 매력적인 책
매혹적이고, 교묘하며, 중독성 있는 이 소설은 훌륭한 스릴러의 삼박자를 모두 갖추었다!
올해 읽은 최고의 스릴러.
단숨에 끝까지 읽게 되는 책.
올해 읽은 최고의 스릴러? 1월 1일에, 가장 먼저 이 책을 읽으신 것 같다.
처음에 이 책을 빌릴 때 이할은 제목이었고, 삼할은 '평화롭고 고요했던 당신 앞에 20년간 나 혼자 감춰왔던 비밀을 담은 소설이 배달된다면?' 라고 뒷장에 적힌 문구였고, 나머지 오할은 전부 추천사였다. 책을 읽은 후 무슨 마음이 들었냐고? 누가 추천사를 썼는지 보고, 그 사람이 추천한 책은 전부 거르고 싶은 기분이었다. 물론 '뉴욕타임즈' 니, '뉴욕 저널 오브 북스'니 해서 그 생각은 바로 접었지만. 앞으로 무턱대고 책을 빌리는 일은 확실히 줄 것 같다. 미리 책에 대해 알아보고나서야 빌릴 것 같다. 한 번의 실패는 사람을 이렇게나 위축시킨다. 한 눈에 드는 책을 그대로 데려가는 일이 얼마나 매력적인데.
책의 절반은 '오, 추악한 그날이 진실이! 대체! 아아! 너무 힘들구나!'라는 캐서린의 심경고백이다. 책은 한 챕터씩 캐서린과 스티븐 브리그스토크가 번갈아 가면서 이루어지지만 그닥 적고 싶지도 않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포르노'다. 캐서린이 숨기고 싶어했지만 책으로 나온 그날의 진실은, 캐서린의 간통이자 외도인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아주 약간, 사실은 간통이 아니라 강간이다! 라고 나온다. 그게 반전인 것이다. 겨우? 그래, 그게 전부다.
캐서린의 남편인 로버트는 안심한다.
그래, 당신이 바람을 필리가 없지! 다행이야! 의심한 내가 나빠 용서해줘 캐서린!
그리고 캐서린은 그게 화가난다.
다행이라고? 내가 강간당한게 다행이야? 간통보다 강간이 낫다니?
캐서린은 로버트와 결혼해 니콜라스라는 아들을 낳는다. 낸시는 스티븐과 결혼해 조나단이라는 아들을 낳는다. 함께 놀러갔지만 로버트가 먼저 떠나게 돼 휴양지에 캐서린은 니콜라스와 둘이 남는다. 그런데 조나단이 캐서린을 강간하고 포르노 사진을 찍어댄다. 다음날 니콜라스가 바다에 빠졌는데 조나단이 그를 구하고 죽는다. 캐서린은 신고하고자 정액도 모으고 증거를 남겨놨지만 조나단이 죽자 그냥 전부 폐기시켜버린다.
낸시는 슬퍼하다 포르노 사진을 보고 아들이 강간했음을 알게된다. 파파라치처럼 찍어댔다거나, 티가 났다 보다. 그리고 공책에 글을 적어버린다. 아들을 위해서인지 뭔지, 강간이 아닌 여자의 바람으로 둘이 사진을 찍었다는 글을. 나중에 스티븐이 그 공책을 발견하고 그게 진실인 줄만 알고 책을 출판한다. 캐서린의 삶을 망쳐버린다. 캐서린, 로버트, 니콜라스에게 그 책을 모두 주고 캐서린의 직장에도 뿌려 직장에도 못나가게 된다.
니콜라스는 충격을 받는다. 엄마가 나를 구하고 싶지 않아했어? 마약을 하고 중환자실에 입원한다. 스티븐은 착한 척 하고 니콜라스를 죽이려다 캐서린이 난리쳐서 실패한다. 캐서린은 스티븐에게 모든 걸 말한다. 강간이었다고. 충격을 받은 스티븐은 로버트에게도 그 사실을 전하고 조용히 집에서 분신자살한다. 로버트는 미안해하고 강간임을 다행시하지만 그게 화가난 캐서린은 이혼할 결심을 한다. 니콜라스가 엄마, 같이 치료 받으러 가요! 하고 책이 끝난다.
정말 하나부터 끝까지 마음에 안드는 이야기라 중간중간 책을 인용하지도 않고 그냥 줄거리만 밝혔다.
그날의 진실! 아아! 얄궂은 현실이여! 왜 나를 괴롭히나! > 감히 바람을! > 사실 강간!
이 흐름을 따라가고 싶지도 않고, 반전에 놀라워하고 싶지도 않다. 짜증나서 한 번에 다 읽게 되는 건 맞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