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노

감상문/책 2017. 7. 10. 19:41

[시라노 : 에드몽 로스탕 (역자; 이상해)]


 프랑스의 극본. 프랑스도 극본도 그닥 관심없던 내가 이 책을 읽은 이유는 오직 뮤지컬 시라노를 보기 위해서이다. 조금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김동완이 <시라노> 뮤지컬에 나와서. 한 페이지를 읽고 이게 뭐야 못 알아듣겠어 안읽을래, 했지만 언니가 읽어보고 읽을만 하다기에 얼른 읽어봤다.


 코가 커 못생겼지만 재치있고 똑똑한 시라노와 잘생겼지만 말도 제대로 못하고 멍청한 크리스티앙은 둘 다 록산을 사랑한다. 록산은 크리스티앙을 사랑하고, 시라노에게 도와달라고 한다. 크리스티앙이 시라노의 부하이기 때문이다. 시라노는 그러겠다한다. 


 그 말을 들은 크리스티앙은 시라노에게 도와달라고 한다. 시라노는 그러겠다고 한다. 시라노는 크리스티앙을 대신해서 록산을 향한 사랑의 편지를 써준다. 둘은 사랑을 키워 나간다. 록산은 시라노에게 자신이 크리스티앙에게 받은 편지를 외워보이며 자랑하고, 시라노는 그녀가 자신의 편지를, 시를 마음에 들어하고 외웠다는 사실이 그저 감격스럽다.


 시라노와 크리스티앙은 전쟁에 나가게 되는데, 시라노는 목숨을 걸고 하루 두 번씩 적들의 포탄을 넘어 록산에게 편지를 보낸다. 록산은 전쟁터로 와, 크리스티앙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197p, 록산: 난 당신에게 용서를 빌러 왔어요. 처음에 경박스럽게도 당신의 외면적인 아름다움만 사랑한다는 모욕을 당신에게 가한 것에 대해!

크리스티앙: (불안에 빠져) 아! 록산!

록산: 하지만 나중에는 완전히 날아오르기 전에 땅 위를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새처럼 덜 경박해진 나는 당신에 아름다움에 붙들리고, 당신의 영혼에 빨려들어 그들 둘 모두를 사랑하게 되었어요!
크리스티앙: 그럼 지금은?

록산: 지금! 마침내 당신이 당신 자신에게 승리를 거뒀어요. 이제 내가 사랑하는 건 오로지 당신의 영혼뿐이에요!


...


크리스티앙: 내가 추남이라도?

록산: 추남이라도! 맹세해요!


 크리스티앙은 '그러니까 그녀가 사랑하는 건 당신이에요. 당신 역시 그녀를 사랑하고!' 라고 시라노에게 말을 해준다. 시라노는 용기를 얻어 록산에게 모든 것을, 그의 영혼은, 그의 편지는, 그의 절절한 사랑고백은 전부 자신의 것이라는 것을 밝히려한다. 하지만 그 때 크리스티앙의 죽음이라는 비보가 전해져오고, 시라노는 영원히 그것을 숨기고 만다.


 마지막 제5막은 15년 뒤 1655년이다. 록산은 계속 크리스티앙을 그리며 수녀원에 살고, 시라노는 주에 한 번 그녀에게 와 세상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말을 나눈다. 뛰어난 재치로 사람들을 골려주던 시라노는, 어느날 하인에게 뒤통수를 맞아 거의 죽어간다. 그 상태로 록산에게 찾아와 시라노는 크리스티앙의 -사실은 시라노의- 마지막 편지를 읽어 주고 싶다고 말한다.


 228p, 시라노: (읽으며) 아마 오늘 밤이 될 것이오, 내 사랑! 내 영혼은 표현하지 못한 사랑으로 아직 무겁기만 하오. 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오! 이제 결코, 취한 내 눈은 결코, 가슴 설레는.....


록산: 정말 잘 읽는군요, 그의 편지를!


시라노: (계속 읽으며) 축제에 빠져있던 내 눈길은 결코 당신의 몸짓들에 가볍게 입 맞추지 못할 것이오. 지금도 당신이 이마를 만지는 익숙한 몸짓이 선하게 떠오르는구려. 난 외치고 싶소.....


록산: (동요하며) 너무나 잘 읽는군요, 그 편지를!


...


시라노: 내 마음은 단 한순간도 당신을 떠나지 않을 것이오. 그리고 나는 지금도, 저 세상에 가서도 한없이 사랑했던 사람으로, 당신을......


록산: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려 놓으며) 어떻게 그 편지를 읽을 수 있죠, 이렇게 어두운데?


깜짝 놀라 고개글 돌린 시라노가 바로 곁에 있는 록산을 보고 흠칫 뒤로 물러나 고개를 숙인다. 긴 침묵. 완전히 어둠이 깔리자 록산이 두 손을 모으고 천천히 말한다.


록산: 지난 14년 동안 그가 나에게 웃음을 주러 찾아오는 오래된 친구 역할을 했군요!

시라노: 록산!


록산: 그건 당신이었어요!


시라노: 아니오, 록산, 아니오!


록산: 그가 내 이름을 불렀을 때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시라노: 아니오! 그건 내가 아니었소!


록산: 당신이었어요!


시라노: 내 맹세하리다......


록산: 그 모든 너그러운 속임수를 이제야 깨달았어요. 그 편지들을 쓴 건 당신이었어요......


시라노: 아니오!


록산: 그 미친 듯한 열정의 말들, 그건 당신이었어요......


시라노: 아니오!

록산: 어둠의 목소리, 그건 당신이었어요!


시라노: 맹세컨대, 아니오!

록산: 영혼, 그건 당신의 것이었어요!


시라노: 난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소.


록산: 당신은 절 사랑했어요!


시라노: (몸부림치며) 그건 그였소!


록산: 당신은 절 사랑했어요!


시라노: (약해진 목소리로) 아니오!


록산: 봐요, 벌써 목소리가 약해지잖아요!


시라노: 아니오, 아니오, 내 소중한 사랑, 난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소!


록산: 아! 너무나 많은 것들이 죽고...... 태어나는 군요! 왜 지난 14년 동안 입을 다무셨나요, 그와 아무 상관도 없는 이 편지에 남은 이 눈물은 당신이 흘린 것이었나요?


시라노: (그녀에게 편지를 내밀며) 피는 그의 것이었소.


록산: 그럼 왜 그 숭고한 침묵이 오늘 깨지게 내버려 둔거죠?


시라노: .....왜냐고?


-


죽을테니까 오늘! 아무런 묘사 없이도, 짧은 말로도, 느낌표로도, 두 격정적인 남녀의 소리침이 그대로 느껴졌다. 극본이나 대본도 매력적일 수 있다는 걸 알게됐다. 묘사가 전부가 아니었다. 이야기의 탄탄함만으로도, 등장인물들의 얽힘이나 아이러니만으로도 충분히 독자들을 매료시킬 수 있다. 


 '몰리에르'라는 사람이 시라노의 '도대체 그가 어떻게 걸려들었을까?'를 훔쳐 공연했다. 하지만 시라노는 쉿쉿! 잘했지 뭔가! 그 장면, 관객들의 반응은 괜찮았나? 하고 물어본다. 진정한 예술가인 것이다. 누구의 이름으로 발표되었든, 자신이 작품이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을 궁금해하는. 


233p, 시라노: 그래, 내 삶은 몰래 할 말을 일러 주고는 곧 잊히는 사람의 것이었어!

(록산에게) 크리스티앙이 당신 발코니 아래에서 당신에게 말을 했던 날 밤, 기억하시오? 그렇소! 그게 바로 내 삶이오. 내가 그 아래, 짙은 어둠 속에서 숨죽이고 있는 동안, 다른 사람들이 영광에 입 맞추기 위해 올라갔오! 그게 정의요. 난 내 무덤의 문턱에 서서 인정하오, 몰리에르는 천재고 크리스티앙은 미남이었다는 것을!


...


록산: 난 단 한 사람을 사랑했고, 그를 두 번씩이나 잃는구나!


시라노는 결국 숨을 거둔다. 마음아프고, 정말 내 취향에 맞는 이야기이다. 곧 보러 갈 뮤지컬이 기대된다. 어떤 노래로, 연기로, 이야기를 풀어낼 것인가. 기대를 충분히 충족시키길, 사실 그것을 뛰어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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