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지킬앤하이드 (18.11.20)
18.11.20. 수 3시, 샤롯데씨어터, 지킬앤하이드
(지킬, 하이드) 조승우 | (루시) 해나 | (엠마) 이정화 | (어터슨)이희정 + (덴버스경) 김봉환
0.
공연장의 열기가 가시지 않은, 샤롯데씨어터 2층
1.
18년 11월 20일, 다섯시 오십 이분. 뮤지컬 '지킬앤 하이드'를 보았다. 뮤지컬은 현장감이 대단하다. 노랫소리 하나에, 몸짓 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온 신경을 집중한다. 열연을 한 건 그들이고 가만 앉아 지켜본 건 나라지만, 끝난 후엔 나까지 긴장이 풀리고 힘들다. 책이나 영화등 다른 서사 매체에 비해 제대로 기억에 남지 않는 것도 그 특성인 것 같다. 현장에서 온전히 모든걸 쏟아부어 몰두하고 나니, 그 다음 일이야 알게 뭔가. 며칠이 지나면 곧 까맣게 모든 걸 잊는 거다. 노래의 작은 넘버나 주조연은 물론, 끝내는 줄거리까지 전부.
2.
두서 없이 써내려갈까 한다. 하이드와 루시의 듀엣이 좋았다. 선정적이고 유혹적이며 과감한, 죄악에 가득찼지만 스스로 거부하지 못한 그들의 노래는 대단했다. 왜 내가 기억을 못했을까, 의심할 정도로.
엠마의 분량은 적었다. 하지만 존재감은 확실했다. 그녀가 마음대로 지킬의 연구실에 들어간 순간이 그러했다. 짧은 넘버는 잘 기억 나지도 않고 대단하지도 않았지만, 후에 주고 받은 대화가 좋았다. 날 버리지마, 신께 멩세코 이토록 당신이 필요했던 적 없어. 기다릴게요, 언제까지라도 영원히. -별 대단치도 않은 기억에 의존해보자면- 대강 이런 대화였는데, 숨소리 마저 들릴듯 작게 숨죽여 속삭이던 애원과 그에 대한 화답은 확실히 인상적이었다. 기억하고 싶어 그 대화를 곱씹을만큼.
엠마의 일방적인 믿음과 그에 화답하는 지킬의 마음도 인상적이었다. 약혼식이 늦은 그가 속삭이는 사랑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제 아버지에게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며 부탁하는 부분도 좋았다.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고 했던가. 가사가 전부 제대로 들렸던 건 아니지만 -한 8,90퍼센트는 알아들은 것 같다.- 지킬, 그의 친구, 엠마, 엠마의 아버지의 4중주가 좋았다. (써내려가는 내내 온갖 수식어가 잔뜩 붙은 명사에 비해 서술어가 너무 빈약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킬의 친구, 이름이 그래, 어터슨. 그는 무대에 난입해 다급하게 소리치고 급하게 뛰어 사라졌다. 싫지 않다. 많은 소설이 관찰자의 시점으로, 그러니까 대개 친구인 관찰자인 '내'가 서술하지만 주인공은 그의 친구인 것처럼, 서술된다. 여기서 어터슨은 관찰하고 이야기를 전하는 '나'다. 지킬의 충실한 하수인인 셈이다. 편지를 받고, 자신의 판단하에 뜯어 보고, 다그쳐 그의 비밀을 알게되고, 루시에게 편지를 전해주는, 마지막에는 하이드가 아닌 지킬을 끝내 죽이는 -죽일 수 없다 애원했으나 지킬은 그의 칼에 자결한다.- 친구이자 변호사. 감초 같은 역할이다.
엠마의 아버지, 댄버스 경. 극중 그의 역할도, 배우도 -'김봉환'이다.- 마음에 들었다. 딸에게 언제나 져줄 수 밖에 없으며, 늘 딸을 걱정하고, '애비란게 다 그렇다'-넘버 중 하나다.- 며 그녀와 그녀가 사랑하는 지킬을 감싸는 덴버스경. 그는 지킬이 대단히 선구적이며 천재적인 의사여서가 아니라, 단지 딸이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아꼈을 것이다. (그러고보니 난 가시고기도 좋아했다. 부성애에 약한가?) 마지막 결혼식에서 하이드가 엠마를 죽이고 할때, 모두가 지킬을 외칠 때, 자신은 하이드라고 하자 하이드! 라고 소리친 한 명이 어터슨인지 덴버스경일지는 모르겠지만, 덴버스경이면 좋겠다. 딸을 살리고자 모든걸 받아들이는 아버지. 그러고보니 엠마는 죽음에 놓인 순간까지 지킬이 자신을 해칠 수는 없다며 그를 믿었다. 바보 같은 사랑을 응원한다.
루시가 조금 아쉬웠다. 연기도, 성량도. 극히 주관적이며 개인적인 의견이다. 극중 역할이 별로라서 더 그렇게 느끼는 걸지도 모르겠다. 우선 지고지순해야할(!) 지킬을 지조도 없고 방탕한, 정조관념이 부족한 사람으로 만들어서 그럴까.
같은 넘버가 몇 번 반복되는, 뭐라 해야하지, 같은 테마의 곡이 반복되는 게 좋았다. 거울 속의 허상은 특히 군중들에 의해 몇 번이나 반복 됐다. 루시가 지킬에게 사랑에 빠지며 불렀던 넘버는, 하이드가 루시를 죽이며 그대로 불렀는데, 완전히 다른 노래로 재해석했다. 지킬이 하이드가 루시를 죽였음을 깨달은 후 불렀던 노래도 전에 불렸던 노래다.
이제 뮤지컬을 보며 느꼈던 생각은 얼추 다 적은 셈이다. 아, 조승우에 대해, 지킬에 말 하지 않았네. 말해 뭐하겠나, 완벽했다.
3.
헨리 지킬과 에드워드 하이드.
지킬은 엠마를, 루시는 지킬을, 하이드는 엠마를 사랑했다.
4.
요새 많은 사람들은 평론가에게, 전문가에게 자신의 감정을 맡겨버린다. 틀리고 싶지 않다, 전부 알고 싶다는 욕심에 보고난 후 해석과 평론을 찾아보고, 소비에 실패하고 싶지 않다, 완벽한 소비만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 보기 전 정보를 탐색한다. 좀 틀리면 어떻고, 실패하면 어떤가. 내가 좋으면 좋은거지. 물론 이렇게 말하는 나도 며칠 전 본 영화 '양들의 침묵'을 보자마자 구글을 켜 해석을 찾아봤다. 지금도 루시에 대해 이렇게 써놨지만, 배우 검색 후 굉장히 유망한 배우라는 소리를 들으면 아닌가, 하고 기억을 고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렇게 실패할 여유도 결국엔 돈과 시간에서 나온다. 표 한장이, 십 사만 천원이, 내게 어떤 가치를 가지는가, 어떤 기회비용을 지불했는가에 따라 다르다. 나야 운 좋게 이런 걸 볼 수 있다지만, 모두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그래서도 안 되고. 내가 원하는 만큼의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을 정도로 돈을 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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