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감상문/책 2020. 3. 18. 21:47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 오스카 와일드 / 출판사: 현대문화, 옮긴이: 하윤숙

 

갑자기 충동적으로 인쇄된 문학책이 읽고싶어져서 집 앞 중고서점가서 사왔다. 

원래는 살로메가 읽고싶었는데, 없길래 아쉬운대로 같은 작가 작품인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을 샀다.

마감 시간 직전에 가서 정말 제목이랑 표지, 출판사만 보고 골라왔다. (정작 처음들어보는 출판사였지만.)

 

옛날에는 책 잡으면 무조건 하루, 적어도 이틀 컷이었는데 

이제 낡고 기력이 쇠해서 그런건지, 인쇄 매체를 안 읽어버릇해서 그런건지,

거진 4,5일이 걸렸다. 

읽다 잠들고를 며칠씩 반복하니 내가 이 책을 산 이유가 불면증 치료를 위해서였나 싶고 자괴감들어... (그와중에 밤낮은 계속 바뀐 채였다.)

 

오스카 와일드에 대해 흥미가 생긴 이유는 대학때 비교문학 수업을 들으며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원작)와 방정환이 번역한 행복한 왕자를 배웠기 때문이다.

심미주의 예술을 위한 예술 이라니 단어의 나열만으로도 짜릿하다. 

(결국 교본까지 꺼냈다.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 반항. 전통, 보수의 가치를 중시했던 영국 문단계의 이단아. 세기말 퇴폐주의. 극도의 낭만주의. 유미주의. 탐미주의. 쾌락. 정열. 

하지만 오스카 와일드가 당시에는 불법이었던 동성애를 하다 재판도 열리고 감옥도 들어가고, 원래 귀족이라 막으려면 막을 수 있었을텐데 그러지 않았다, 뭐 이런 쓸데없는 것들만 기억에 남는다.

방정환의 행복한 왕자는 바뀐 부분이 많아 번역보단 개작, 번안이 맞다.)

그래서 살로메가 요한의 목을 잘라 은쟁반에 올리는 걸 꼭 보고 싶었는데

며칠 전 찾아갔던 도서관은 코로나 때문에 문을 닫고 서점에는 없고... 인연이 아닌갑다. 

 

표지에는 남자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데 잊는게 좋다. 아무리 잘 그린 그림이더라도 책 속의 묘사를 따라갈 수 없다. 

나의 도리안 그레이는 이렇게 생기지 않았어... 이것보다 더 잘생겼다고... 

간만에 책 읽으니까 내가 왜 책 원작인 영화를 싫어했는지 다시 기억났다. (물론 요즘은 책 원작인 영화의 영화만 보고는 잊음) 

 

거진 뭐 사랑이야기다.

젊고 아름다운 소년 도리안 그레이, 그를 숭배하고 흠모한 화가 바질 홀스텐, 냉소적인 신사 헨리 워튼의 삼각관계. 

사실 처음에 스포일러를 당해버려서 조금 슬펐다. 책 뒷면에 '영원한 젊음을 소유할 수만 있다면 당신은 자신의 영혼을 포기하는 대가를 치를 용기가 있는가?'라고 붉고 커다란 글씨로 적어놓는 건 너무하다.

차라리 이 책이나 작가를 찬양하는 그렇고 그런 인터뷰나 기사 몇 개 적어주지... 

그래도 알고 봐도 재밌다. 읽으면서 몇 번이나 잠들었으니 재밌다는 아니고. 

문체나 표현이 정말 유려하다. 왜 심미주의인지 너무 잘 알겠다. 

읽다가 심장이 뛰었던 부분 (필사하고 싶은 문장) 에는 포스트잇을 붙여놨는데 거진 10-20개가 된다.

대다수가 헨리 워튼의 말이지만...

 

스토리만 따지고 보자면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고 개연성도 이런 개연성이 없다.

시빌이 죽는건 예상했다. (헉 설마 죽는거 아냐?)

그런데 왜 바질을 죽여버렸는가는 딱히 죽일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문체에 바로 납득. 그렇군 그러면 죽일만 하지.

유일한 장편 소설이라니 조금 아쉽기도 하고. 다른 단편 소설들 한 번 읽어봐야겠다.

작년 대학로에서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총체극을 했다는데 아쉽다. 작년에는 너무 바빴으니 어쩔 수 없지만. 

 

나는 책을 쉬엄쉬엄 조금씩 읽는 스타일은 못된다.

한 번 잡으면 놓을 수 없다! 이건 이제 아니고. 중간중간 딴짓하고 스마트폰 만지고 그러는데

계속 마음의 짐으로 찜찜하게 남아있다.

밥 먹으면서도, 영화를 보면서도, '아 책 마저 다 읽어야 하는데...'라고 생각을 하고 마는 것이다.

드라마는 고쳤다. (옛날에는 잡으면 무조건 끝내야했다.) 

책도 고칠 수 있을까. 고쳐야 하나 싶기도 하고. 

 

독서록이라기보다는 거진 뭐 딴소리 키티 일기장인데 이런 날도 있는거라고 생각한다.

캘리그라피... 아니 손글씨 교본이라도 사서 글씨 예쁘게 쓰고 싶다.

특히 이런 필사하는 글은.

 

그리고 예술 너무 좋다. 그림, 음악 등 글로는 절대 표현할 수 없는 (매체적 한계로 인해) 예술들을 기어이 표현해내고 마는 순간들이 좋다. 그 예술가들이 광기까지 어리면 더 좋다.

달과 6펜스도 그래서 좋았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에서 바질의 예술관도 좋았다. 그림에는 화가가 담길 수밖에 없다고.

이런 예술에 관련된 책들이 뭐가 있을까. (단 교양을 쌓기 위한 목적으로 정말 가르쳐주면 곤란하고 어디까지나 문학작품 내에서 예술은 소재여야한다. 천재들은 돌아버린게 좋다.) 

 

하고 싶은 게 많은데 자꾸 스마트폰만 만지고 있다 기어이 밤을 새는 버릇을 고쳐야겠다고 생각한지 백만년.

이제는 실천할 때도 됐을텐데. 

'감상문 >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블랙 코미디  (0) 2018.02.09
누군가는 알고있다.  (0) 2017.10.16
미스터 하이든  (0) 2017.10.16
시라노  (0) 2017.07.10
가시고기  (0) 2017.07.07

설정

트랙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