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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스피스
연극 마우스피스, 20.8.18, 김신록 장률, 1층 A열 살짝 왼블이었지만 그래도 거진 중블.
마우스피스. 최근 본 연극 중 가장 마음에 들었다. 뭐, 봤다고 해야 몇 개 되지도 않지만 말이다. 킬미나우나 엘리펀트 송보다 훨씬 좋았다. 내 취향에 더 잘 맞았다는 게 맞겠다.
중년여성, 예술, 작가, 글, 그림, 가난, 불안정 따위의 말로 정의될만한 연극이다. (연극열전 두번째라고 적혀있었는데도 왠지 난 뮤지컬인줄 알았다. 5분, 10분이 넘어가도록 노래를 안 불러서 그제야 아, 연극이구나 싶었고. 원래 연극이나 뮤지컬, 영화의 줄거리나 시놉시스를 잘 읽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다.)
극은 메타 형식이다. 극 밖의 '작가'가 나서서 극의 시작은 어때야하고, 무슨 규칙이 있고 -처음, 시작은 어떤 일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 좋다. 중간인 것처럼, 따위의 말을 하는 거다.- 하고 이야기를 하다, 극 안으로 들어가 극 안에서의 등장인물이 되어 보여주는 거다.
벽에 조명으로 글자를 띄우기도 했다. 보통 시간과 장소, 인물을 나타냈고 간혹가다 그것은 리비가 쓰고있는 글이나 시한의 대사, 데클란과 리비가 주고받은 문자가 되기도 했다. 다른 극에서 벽에 조명으로 글자를 쓰지 않는 건 아니지만, 보통 그런건 시간과 장소를 알려주는 데 그치니까. 새로운 시도였다. (혹은, 이미 흔하게 쓰이는 데 나만 처음보는 걸 수도 있고.)
2인극은 이번이 두 번째다. 키다리 아저씨는 뮤지컬이었고, 아, 렁스도 있었지. 세번째다. 물론 사람이 많이 나오는, 대극장의, 그러니까 극중인물마다 배역이 있는 것도 자본의 맛이라 좋지만, 이런 소극장 2인극만의 매력도 있다. 필요한 소품을 등장인물들이 자연스레 가지고 나오고, 그들의 입을 빌어 다른 사람의 대사를 듣고-여기서는 리비와 데클란의 부모라거나, 시한이라거나, 데클란에게 표를 판 어셔 등의 사람들.- 온전히 두 사람만이 만들어내고 풀어내는 이야기를 보는 재미가 있다.
이 연극은 서술의 방식으로 진행된다. 나는 막 뛰어요, 그녀는 세면대에서 정신없이 물을 마셨다, 나는 절벽에서 떨어진다, 따위의 말을 등장인물이 작접한다. 신기한 것은 그런 서술들이 몰입도를 해치지 않는다. 정말 집중해서 봤다. 보다가 이건 후기에 이렇게 쓰면 좋겠다던가 딴 생각을 하기 마련인데 이건 초반에는 그런 생각을 전혀 못했던 거 같다.
(내가 공연 관람할 때 처음으로 옆 사람의 숨소리가 거슬렸다. 마스크를 껴서 그런걸까. 내가 소위 말하는 시체관극을 강요하는 사람이었나 싶을만큼 신경이 쓰였다. 비염인가? 코고는 소리? nn번 관람하면서 이렇게 옆 사람의 숨결을 매순간 느낀 적은 처음이라 불쾌하면서도 당황스러웠다.)
데클란이 말을 씹듯이? 웅얼거리듯? 대사를 쳐서 처음에는 조금 답답했는데 (그렇다고 대사가 안 들리진 않았다. 들리긴 했다.) 갈수록 나아진건지 적응한건지 뒤에는 괜찮더라.
차세대의 떠오르는 샛별, 이십년간 아무것도 쓰지못한, 극작가였던, 마흔 여섯의 라비. 김신록 배우님은 너무 좋고 열연해주셨지만 극중 나이에 비해 좀 많이 젊지 않았나 싶다. 해봐야 삼십대신 것 같던데. 정말 중년 여성이 필요하다. (혹시몰라 네이버에 쳐봤는데 생년월일이나 나이가 안 나온다.)
그 메릴스트립도 시간이 지나자 자신에게 돌아오는 배역이 한정됐다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도, 스크린에서 볼 수 있는 남자 탑 배우들은 나이가 들고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인데, 여자는 끊임없이 바뀌며 늘 어리다. 물론 난 그런 분야의 정확한 생태계도 모르고, 실력이 없다거나 본인이 그만둔 거 아니냐, 하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잘만 연기한다, 하고 증거나 자료를 들이밀며 따지면 할 말은 없다. 그냥, 가끔 티비를 보거나 옛날와 요즘의 한국 영화를 가끔 보는 입장에서 그렇게 느꼈다는 거다. 요새 사소한 것도 남녀간의 분쟁으로 이어가려는 시도, 혹은 사람들이 많아서 말 한 마디도 괜히 조심하게되고 사족을 덧붙이고 만다.
나는 그냥 중년 여성과 어린 남성간의 이야기가 보고싶다. 꼭 로맨스가 아니어도 좋다. (사실 이 작품에서도 그렇게 될 줄은 몰랐다. 03년 생이면 열일곱이잖아! 결과적으로 실패한 그날의 시도가 둘 사이의 관계를 바꾸어놨지만, 어쨌든.) 뭐 내가 대단히 페미니즘적인 시각에서 하는 말은 아니다. (몇 년 전에 페미니즘에 대해 책으로 공부를 한 번 해보려다 너무 어려워서 실패했다. 아직도 기억난다. 주디스 버틀러, 젠더 트러블. '이 책을 읽지 않고 페미니즘을 논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렇게 난 페미니즘을 논하지 못하게 됐다. 구조주의, 소쉬르, 랑그... 책읽다 중간에 나오는 이론이나 담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다시 그것에 관한 책을 읽고 정리하고 그러다 포기했다. 아직 나에겐 너무 어렵더라.) 그냥 내가 그런 이야기가 보고싶다. 수요 여기 하나 있다!
그래서 '정직한 후보'나 '리빙(영국 드라마, 헬렌 맥크로니와 칼럼터너)'이 좋았다. 세상 풍파 겪을대로 겪어 낡고 지친 위태로운 중년 여성과 어리고 열정이 가득한 젊은 청년, 그들이 엮이는 게 보고싶다. 그 반대는 충분히 봤기도 했고. 어리고 저돌적이고 들이대는 청년이 보고싶은게, 지치고 우울하고 권태로운 중년여성이 보고싶은게 죄는 아니지 않나. 왜 내가 이런 거 하나 보고싶다고 말하는데도 스스로 변명하고 앉아있어야하는지 모르겠다. 자기검열 그만해야지.
아 이 연극의 결말도! 리비와 데클란이 각자 하는 말이 달랐다. 리비는 데클란이 칼로 그의 목을 찔러 죽었다고 말하고, 데클란은 자신이 밖으로 달려 나간다고 말한다. 무엇이 진짜인지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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