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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7.07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 햇빛 사냥 / 광란자
글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 햇빛 사냥 / 광란자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 햇빛사냥 / 광란자 : J.M. 바스콘셀로스]
w. 꼬요빈
본편만한 속편은 없다고 했던가. 내가 그것을 깨달은 것은 '마음이 2'를 영화관에서 친구와 함께 보고난 직후다. '마음이'에서 엄마가 자식들을 버렸을 때, 여동생이 물에 빠졌을 때, 아이가 앵벌이 짓을 할 때, 여동생의 유품이나 다름없는 가방을 지키기위해 노력할 때, 그 때 마다 느꼈던 감동을 그대로 가져갈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낮은 기대에도 불구하고 그 기대치를 채울 수는 없었다. 내용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강아지 구출 대작전? 허무맹랑한 액션에 웃으라고 만들어 놓은장면인가 고민하게 만드는 코미디. 몇 년전이지만 영화에 실망해 쓴웃음을 지으며 친구와 영화관 에스컬레이터를 내려온 일은 아직도 생생하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는 몇 번이나 읽었던 책이다. 매번 다른 출판사에 다른 옮긴이었지만, 몇 년에 걸쳐 한 번씩은 읽었더랬다. 아주 어렸을 적엔 그저 제제가 불쌍했고, 조금 더 크고 나서는 실업자 아빠와 가난한 엄마 밑에서 철없이 장난만 치는 제제가 너무했다. 그러고 나서는 아이들은 장난치는게 당연하지 않은가 하고 다시 제제를 옹호하게 됐더랬다. 철없이 조숙한 꼬마 제제를 마주할 때 마다 울지 않았던 적은 아직 없었다.
내신, 수능, 국영수사의 공부라는 미명하 고등학교 때 독서는 내게 금기시 됐었다. 어느 누구도 막은 것은 아니지만 한가하게 책이나 읽고있을 시간이 아니라고 스스로 생각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2, 3편이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읽고싶었다. 제제가 어떻게 컸을지 궁금했다. 하지만 수능 후로 미뤄놨다. 수능이 끝나고 책을 읽지는 않았다. 나는 책을 좋아한다고 생각해왔는데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가끔 한 두권을 읽긴 했지만 제대로 책에 빠져 살지는 않았다.
많은 시간이 지나고, 다른 책을 빌리기위해 도서관에 갔는데 불현듯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가 생각났다. 홀린듯 곧바로 검색하고 청구기호를 출력해 책을 찾았다. 옮긴이가 모두 같기를 원했지만 아쉽게도 1,2편과 3편은 달랐다. 번역된 책이란 무엇보다 옮긴이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 출판사라도 같은 것을 위안으로 삼고 책 세권을 전부 빌렸다. 조금의, 애매한, 뭐라고 표현해야할지 모를 완벽주의가 있는 나로서는 1편부터 제대로 정주행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는 언제나의 감동을 내게 전해줬다. 때때로 마음이 아팠고 눈물이 흘렀고, 이렇게 어린애를 그렇게까지 때려야했나, 못된 잘못을 하긴 했네, 끊임없이 대화하며 읽었던 것 같다. 혹은, 한 페이지나 한줄마다 덧글을 달며. 그렇게 나의 오렌지 나무를 끝까지 읽었을 때 나의 기대감은 더욱 올라갔다. 2편인 햇빛사냥과 3편인 광란자는 어떨까!
의리. 사람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바른 도리.
정. 사랑이나 친근감을 느끼는 마음.
의무. 사람으로서 마땅히 하여야 할 일.
의리로, 정으로, 의무로 읽었다. 기대는 산산히 무너졌으며 이게 뭐야, 왜, 하는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한 번 시작한 작품은 끝을 봐줘야 한다는 심성과, 내가 그래도 몇년간 제제와 쌓아온 의리와, 제제가 어떻게 커가는지 봐줘야겠다는 정과, 몇 년전부터 궁금해했고 빌려온 이상 제제의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의무로 마지막 책장까지 넘길 수 있었다. 그래도 제제와 나 사이의 의리가 있지.
2편인 '햇빛사냥'은 그대로 가져다 베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심장속의 꾸루루 두꺼비인 '아담'은 라임오렌지 나무인 '밍기뉴'이고, 영화배우이자 상상속의 '모리스 아저씨'는 포르투칼 아저씨인 '뽀르뚜가' 였다. 상냥한 '펠리시아누 수사님'은 상냥한 담임선생님 '쎄실리아 빠임' 선생님이었고. 바뀐 것이라고는 가족밖에 없었다. 가난한 대가족에서 부유한 의사네 집으로 입양을 간 것 밖에 없었다. 그나마도 이제 가족에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없나 하는 못된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3편인 '광란자' 더욱 가관이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양아버지가 아프고, 제제는 사랑을 한다. 그게 전부다. 끝. 다른 내용은 없다. 실망스러웠다.
감동을 전해주며 읽는 이를 눈물짓게한 제제는 이제 없다.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언제든 추억 한 쪽에 남겨놔 아, 읽어야 하는데, 로 남겨놓아야 맞는 책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읽고 실망할 바에야.